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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한국영화

영화 <쌀>에 나타난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도 및 상징성

by join-love 2025. 4. 18.

— 민족국가와 젠더 권력의 시각에서 본 1960년대 국가주의 영화의 이데올로기

목차

  1. 서론: 영화 <쌀>과 1960년대 국가 권력 담론
  2. 남성의 역할 구도: 민족국가의 주체와 동성사회
  3. 여성의 역할 구도: 타자화와 이성애적 종속
  4. 남녀 구도의 젠더 권력과 상징성
  5. 결론: 민족국가 형성과 젠더 이데올로기

1. 서론: 영화 <쌀>과 1960년대 국가 권력 담론

1963년에 제작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쌀>은 단순한 농촌개발 영화나 남성 영웅담이 아닌,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자주적 근대화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는 국가 주도의 근대화가 어떻게 대중문화, 특히 대중영화라는 통속적인 형식 속에 내재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쌀>은 남성의 집단적 연대, 노동, 헌신을 중심에 두고 근대 민족국가의 정당성을 정서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 동시에 여성은 이러한 남성 중심 서사의 장애물 또는 보조자로서 기능하며, 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성별 권력의 비대칭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2. 남성의 역할 구도: 민족국가의 주체와 동성사회

영화의 주인공 ‘용이’는 한국전쟁에서 다리를 다친 상이군인으로, 가족의 생계와 고향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개발사업(굴뚫기)을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인물이다. 그는 전근대적 권위인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며, 마을 주민들과 연대해 황폐한 논에 물을 대는 근대화의 상징적 작업을 해낸다.
여기서 남성은 개인적 주체가 아닌 **국가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민족국가의 ‘국민 주체’**로 형상화된다. 이들이 구성하는 남성 동성사회는 계급·직업·세대를 초월한 **형제애적 연대(bonding)**를 통해 근대 민족국가 형성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하며, ‘강인하고 계몽된 국민’이라는 국가 권력 담론의 이상형을 구체화한다.

 핵심 키워드: 민족국가, 남성 동성사회, 집단적 노동, 국민 주체, 개발주의 담론

3. 여성의 역할 구도: 타자화와 이성애적 종속

반면 여성은 영화 <쌀>에서 남성 집단의 근대화 서사에 편입되지 못하는 타자적 존재로 묘사된다. 하녀, 여동생, 계모, 장모 등은 굴뚫기 사업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주변적 인물이며, 남성의 공동체적 권력 형성과 연대를 위협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이들은 민족국가 서사 안에서 **‘극복되어야 할 장애물’ 혹은 ‘보조적 정서의 장치’**로 기능한다.
예외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정희’는 주인공 용이의 애인이자 지지자로서, 남성 주체의 감정적 동반자 역할을 수행하며 민족국가 서사에 ‘보조적으로’ 참여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남성의 여성, 즉 이성애적 관계 속에서만 민족국가의 구성원으로 승인받는다. 여성은 독립적인 국민 주체가 아닌, 반드시 남성과의 성애적 계약(결혼, 약혼)을 통해서만 사회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핵심 키워드: 여성 타자화, 이성애 규범, 민족국가 서사, 성별 권력, 종속적 여성성


4. 남녀 구도의 젠더 권력과 상징성

<쌀>에서 남성과 여성은 정치적·사회적 주체화에 있어 전혀 다른 조건을 부여받는다. 남성은 집단적 연대와 노동 참여를 통해 자동적으로 국민이 되는 반면, 여성은 이성애적 관계를 통해서만 국민으로의 진입이 허용된다. 이는 성별 권력 구조가 국가 권력 담론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남성은 국민이라는 동일성과 중심성을 획득하고, 여성은 민족국가 형성의 무대이자 보조적 장치로 위치하게 된다. 영화는 이 같은 젠더 위계를 자연스럽게 설정하며, 여성의 정치적 권리나 독립성은 철저히 배제된다. 특히 바걸이 말한 “우리도 상처받았다”는 대사는 민족주의 서사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얼마나 주변화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핵심 키워드: 젠더 위계, 정치적 주체성, 이성애적 종속, 성별 권력, 근대화 알레고리

5. 결론: 민족국가 형성과 젠더 이데올로기

<쌀>은 국가 주도의 근대화와 민족주의를 찬양하는 동시에, 남성 중심의 국민 형성과 여성의 종속을 전제로 한 젠더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한다. 영화는 남성의 노동과 집단성을 통해 민족의 재건을 묘사하며, 여성은 이 서사의 주변 또는 배경으로서 기능한다. 여성이 주체로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남성의 여자’가 되어야 하며, 이는 국가 권력 담론이 성별 권력을 활용해 내부 모순을 봉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함을 의미한다.
결국 <쌀>은 단순한 근대화 영웅담이 아니라, 민족국가를 정당화하고 젠더 권력을 재생산하는 정치적 서사물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1960년대 한국영화가 어떻게 남성 중심 민족주의의 허구를 감추고, 여성의 타자화를 통해 국가 권력 담론을 강화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